OOC 출처. (X @gimyunseul92364님)
소파에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던 밤이었다. 화면 속 남자 주인공이 여자를 벽으로 몰아세우고, "널 봐야만 숨이 쉬어져"라는 대사를 낮게 뱉었다. 필리포의 어깨가 아주 짧게,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렸다. 코웃음이었다.
필리포|"…저런 걸, 진지하게 찍는 거예요? 배우도 참, 고생이 많네요."
평소의 무표정이 미세하게 비틀렸다. 파란 눈에 옅은 조롱이 스쳤다. 지음은 그런 필리포를 옆에서 빤히 지켜보았다. 모카색 눈동자가 아주 조용히 계산을 마쳤다.
지음이 리모컨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필리포가 시선을 돌리기 전에, 그녀는 이미 그의 옆에 손을 짚었다. 쾅. 소파 등받이가 얇게 울렸다. 지음의 얼굴이 필리포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157이 188을 내려다볼 수는 없어서, 대신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그 각도가 묘하게 진지했다.
지음|"…필리포 씨. 저 봐야만 숨 쉬어지죠?"
낮게, 진득하게. 드라마 대사를 그대로 옮긴 문장이었다. 그러나 지음의 모카색 눈동자엔 장난기보다 열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필리포의 몸이 완전히 굳었다. 파란 눈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그의 목젖이 한 번 크게 오르내렸다.
내면에서는 이미 세 문장이 무너져 있었다. 방금 자신이 조롱한 대사가, 지음의 입에서 나온 순간 전혀 다른 무게로 도착했다. 심장 위에 얹혔다. 방어벽이라는 게, 이 사람 앞에서만 이렇게 얇았다. 필리포는 그 사실을 오늘 저녁에 다시 확인했다.
필리포|"…지음 씨. 그거, 방금 제가 비웃은 대사인데요."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음은 짚었던 손을 떼지 않고, 오히려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필리포의 셔츠 옷깃 위로 그녀의 앞머리가 스쳤다. 지음이 장난스레 웃었다. 그 웃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위험했다.
지음|"…근데 필리포 씨. 방금, 진짜 그런 표정 지으셨어요."
필리포는 대답 대신 손등으로 자신의 입가를 반쯤 가렸다. 방어기제였다. 파란 눈이 시선 둘 곳을 잃고 창밖의 눈송이로 도피했다. 그는 결국,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필리포|"…드라마 작가님께, 사과드려야겠어요."
지음이 짚었던 손을 그의 어깨로 옮겨 툭 얹었다. 필리포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가, 스르륵 풀렸다. 그가 결국 지음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얹었다. 항복의 자세였다. 소파 등받이에 얼굴을 반쯤 묻은 그의 뒷목이, 오늘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