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성 후일담 에피소드 — 5년 후]
【 2029년 4월 17일, 화요일 | 18:42 | 서울, 자택 거실 】
그림을 그리다 말고 초아가 크레용을 툭 놓았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안죽림을 올려다보며, 도톰한 입술을 오므렸다.
초아 | "아빠, 이거 존나 잘 그렸지 않소?"
시간이 멈췄다.
소파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던 난초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그대로 굳었다. 눈꺼풀이 한 번 깜박였다. 두 번. 세 번.
러그 위의 안죽림은 초아의 그림을 보다가——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살짝 들었다. 실눈 사이의 진녹색이 난초 쪽을 향했다가 다시 초아에게 돌아갔다. 목의 나비 문신이 한 번 크게 퍼덕였다.
안죽림 | "……초아야."
낮은 목소리. 조심스럽게.
안죽림 | "그——그 말은, 아빠만 쓰는 말이라고 했잖소. 어……잖아."
자기가 방금 '잖소'라고 말한 것을 깨닫고 안죽림이 입을 다물었다. 실눈이 접혔다. 이건 이거대로 문제였다.
난초가 태블릿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난초 | "……초아야."
딸을 불렀다. 무뚝뚝한 톤. 그러나 목소리 아래로 뭔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난초 | "어린이집 가방 가져와."
초아가 크레용을 놓고 총총총 뛰어갔다. 안죽림은 소파에 앉은 난초를 올려다보았다. 러그 위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5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세.
안죽림 | "……난초."
낮게 불렀다. 목소리에 이미 죄책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안죽림 | "존나 미안하오."
난초는 대답하지 않았다. 초아가 뛰어와서 어린이집 가방을 내밀었다. 난초가 알림장을 꺼냈다. 페이지를 넘겼다. 오늘 날짜.
[화요일 알림장]
안녕하세요, 어머님. 초아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정말 예쁘고 총명한 하루를 보냈어요! ☺️
그런데 어머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볼 것이 있어서 알림장을 남깁니다.
오늘 자유놀이 시간에 초아가 블록을 쌓다가 옆 친구가 실수로 무너뜨렸는데요, 초아가 아주 예의 바르고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괜찮소, 존나 괜찮소."
그리고 점심시간에 반찬으로 나온 시금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어허, 이건 존나 별로구려. 근데 몸에 좋으니 먹어야 하지 않겠소."
또 낮잠 시간에 이불을 덮어주니 저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선생, 존나 고맙소. 잘 자시오."
발음도 또렷하고 태도도 정말 의젓해서 선생님들 사이에서 화제였답니다. 다만…… 사용하는 어휘가 다섯 살 아이의 것으로는 조금 특이해서요. 특히 '존나'라는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문맥에 맞게 사용하고 있어요.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강조 부사처럼 사용하고 있답니다.
혹시 가정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있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초아가 워낙 부모님을 좋아하고 잘 따라서, 가정에서 자주 듣는 말을 그대로 학습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언어 발달에는 문제가 없고 오히려 어휘력이 뛰어난 편이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다만 다른 아이들과 학부모님들 사이에서 조금씩 이야기가 나와서……🥺
가정에서 한 번 이야기 나눠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담임 김지영 드림 🌸
난초가 알림장을 덮었다. 천천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이 알림장 표지를 한 번 두드렸다. 톡, 톡.
러그 위의 안죽림이 무릎을 꿇은 채로 상체를 아주 살짝 뒤로 물렸다. 도망칠 준비가 아니었다. 그저——반사적으로. 5년간 축적된 학습된 반응.
안죽림 | "……."
침묵.
안죽림 | "……저기, 난초."
조심스럽게. 실눈 사이로 눈치를 살피며.
안죽림 | "이거 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닐 수도 있지 않겠소? 초아가 존나 언어 습득력이 뛰어나서——"
난초 | "안죽림."
이름을 불렀다. 짧게. 한 마디로.
안죽림의 입이 다물어졌다. 완전히. 목의 나비 문신이 날개를 접었다.
초아가 두 사람 사이에서 눈을 굴렸다. 진녹색 눈동자가 아빠와 엄마를 오갔다. 이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한 다섯 살의 눈치. 초아가 슬금슬금 안죽림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안죽림의 팔을 자기 어깨에 두르고, 자기 몸을 방패로 삼았다.
초아 | "……엄마, 아빠 화내지 마시오."
작은 목소리. 아빠를 감싸며. 그것도 아빠 말투로.
안죽림의 실눈이 접혔다. 이번엔 확실히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참는 얼굴.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웃으면 안 된다. 지금 웃으면 진짜 죽는다.
난초의 눈썹이 한 번 꿈틀거렸다. 그리고 난초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러그 쪽으로 다가와서,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초아의 눈높이에.
난초 | "초아야."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초아를 대할 때만 나오는 톤. 여전히 무뚝뚝하지만, 어딘가 물렁해진.
난초 | "'존나'는 어린이집에서 쓰면 안 되는 말이야."
초아 | "……왜 존나?"
진지한 눈으로 되물었다. 진녹색 눈동자가 커다래져서. 정말로 이유를 몰라서.
난초 | "왜냐면——"
난초가 말을 멈췄다. 이유를 설명하려다가, 자기도 마땅한 논리를 찾지 못했다. 나쁜 말이니까? 그런데 아빠는 매일 쓰는데? 다섯 살 아이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난초의 시선이 안죽림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안죽림의 무릎 위에 앉은 초아의 뒤에 있는 안죽림에게. 초아 뒤에 숨은 채로.
안죽림이 실눈을 접었다. 항복하는 표정으로.
안죽림 | "……초아 아빠가 잘못했소. 어린이집에선 그 말 쓰지 말자, 응?"
초아가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진녹색 눈동자가 커다래져서.
초아 | "……그럼 집에선 존나 써도 되오?"
안죽림의 어깨가 결국 흔들렸다. 실눈 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소리 없이. 그러나 참지 못하고.
난초가 안죽림을 노려보았다. 안죽림이 즉시 웃음을 삼켰다. 목의 나비 문신이 다급하게 날개를 접었다.
안죽림 | "……아니오. 집에서도 안 되오. 아빠도 이제 안 쓸 거요."
초아 | "왜 존나?"
난초 | "……초아야."
난초가 이마를 짚었다. 검지와 엄지로. 아주 짧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난초 | "……일단 밥 먹자."
포기하는 톤. 난초가 일어섰다. 안죽림이 초아를 안고 따라 일어섰다. 초아가 안죽림의 목에 팔을 두르고 매달렸다.
초아 | "아빠, 오늘 저녁은 존나 뭐요?"
안죽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실눈이 접힌 채로, 목의 나비만 조용히 퍼덕이고 있었다.